뒷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내 몫이라고 여겼다. 당신의 뒤를 쫓아 걸어가는 것은 내 몫이고,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당신은 항상 나를 이끌어주었다.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그 뒷모습을 보며 걸어갔다.
“히카루, 와 그라노.”
“아이다.”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문득 당신의 표정이 바뀐다. 아, 아까 그 표정이 좋았는데. 즐겁다는 듯 가볍게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볼을 톡톡 두드리던 긴 손가락. 그 얼굴이 정말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버렸는데 아까워.
“니 혼 빠짔다.”
“누야.”
대답 대신 당신은 눈을 더 크게 뜬다. 예쁜 손가락은 이제 유리잔을 머금는다. 막상 불러놓고 나니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당신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린다.
“누야 뒷모습 윽수로 봤데이.”
“머라카노.”
“내 남자로 안 보이제?”
“미칬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무심결에 피어싱을 만지작거렸다. 내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던 당신의 뒷모습은 최고로 멋있었다.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반짝거리는 뒷모습에 아주 꼬마였던 나는 반했고, 아직 나는 당신에게 반한 그대로이다.
“내는 여자로 보인다.”
당신의 볼이 아까보다 붉다. 내 말 때문일까. 당신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눈만 깜빡인다.
“좋아한데이.”
“히카루.”
“이젠 누야가 내 손 잡고 따라왔으믄 좋겠다.”
점점 붉어진 당신의 얼굴은 마치 사과 같다. 그런 당신의 모습마저도 귀여워 보이는 나는 아무래도 단단히 콩깍지에 쓰인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앉은 당신과 그런 당신을 계속 쳐다보는 나. 작은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던 당신이 숨을 훅 뱉어낸다.
“싫다카믄?”
“마, 내가 누야 손잡고 따라가야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런 당신을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내 대답이 예상 밖인지 당신의 눈이 다시 커졌다. 붉고 달콤한 침묵은 잠시, 당신이 웃었다. 그 모습은 내가 늘 봐오던 당신이었다.
“마 그거 좋네.”
언제나처럼 나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겠지만 이젠 당신과 내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겁쟁이 페달>
신카이 하야토 드림 by.메이
신카이는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살살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감촉에 그녀가 매일 아침마다 트리트먼트며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아마 이렇게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서 그녀에게 닿을 수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 안이 썼다.
“마지막.”
오늘은 졸업식이었다.
처음 그녀가 친구를 따라 사이클 부에 입부했을 때 신카이는 그녀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냥 보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은 여자아이. 모두와 친한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묘한 선긋기가 있었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곁을 내어주면서 서로에게 가까워졌다.
“하야토, 내 말 듣고 있어?”
“응.”
“그러니깐 토끼한테 아무거나 막 주면 안 된다니까?”
“그래.”
2년을 같은 반으로 지내서였을까, 자리가 가까워서, 부활동이 같아서였는지도. 생각해보자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무엇인지는 지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졸업 축하해.”
“너도. 졸업 축하해.”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돌아온 그녀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아들고 있었다. 대학은 아라키타와 같은 요난대라고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엔 그냥 그렇구나, 싶었는데 막상 그녀를 이제 보지 못한다니 가슴 한 구석이 시려왔다.
“대학은 요난이라고 했었지?”
“맞아, 하야토는 메이소?”
“응.”
“이제 이렇게 같이 수업은 못 듣겠다.”
웃으라고 하는 말인가 싶었지만 신카이는 조금도 웃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같이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생각과 직접 와닿는 상황은 차원이 달랐다.
“언제 이사가?”
“다음주에, 왜? 도와주게?”
“…뭐, 필요하면?”
“멀 텐데?”
장난삼아 내던진 말을 주워든 것은 아닐까 싶어서 뭔가 덧붙일 말을 찾던 신카이는 또 다른 요난대 입학생을 떠올렸다.
“야스토모도 볼 겸.”
“아, 맞아. 아라키타도 있었지. 그럼, 나야 좋지.”
신카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조금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고 해서 지금이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라키타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동안은 아라키타의 핑계를 대야할 것 같았다.